- 박원순, 시민운동가에서 3선 서울시장, 차기 대권주자까지의 마지막 정치행보
- 서정협 행정 제1부시장 권한대행, 차질없는 시정업무 약속

박원순 서울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 출생으로 경기고를 졸업하고 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진학했다. 하지만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4개월 복역하게 되면서 제적처리를 받게 된다. 제적 이듬해인 76년 단국대 사학과에 재입학한 박 시장은 80년 22회 사법고시에 합격, 사법연수원 동기로 문재인 현 대통령과 친분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 대구지검 검사로 임용됐지만 1년만에 물러났다.

이후 변호사 개업을 한 박 시장은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권인숙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사건 등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굵직한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2002년부터는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 기부문화 확산 및 사회적 기업 설립에 앞장섰다. 2006년에는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시민들이 내놓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작업에 주력했다.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사퇴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 나서게 되면서 정치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그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서울시장을 맡게 되었다. 박 시장은 당시 무소속으로 지지율이 5% 내외로 미미했지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단일화 등을 통해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해,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눌렀다.

박 시장은 2012년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제기되는 등 정치권의 견제가 이어졌지만, 안정적으로 시정을 이끌며 2014년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승리하며 3연임에 성공했다. 임기 동안 ‘강북 균형발전’, ‘공공와이파이’, ‘제로페이’, ‘미세먼지 시즌제’, ‘서울로7017’등 친서민 정책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중앙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며 지방 정부 차원에서 재난에 준하는 수준으로 대처해 좋은 평가를 받은 데 이어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도 “늑장 대응 보다는 과잉 대응이 낫다”며 적극적 조치를 취해 호평을 받았다.

시민운동가와 서울시장 이력을 바탕으로 박 시장은 최근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도 올랐다. 하지만, 성추행 의혹으로 인한 도덕적 타격에 대한 압박감이 컸던 것일지, 박시장의 정치적 행보는 그만 급하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서정협 행정 제1부시장

한편 서울시장 권한 대행을 맡게 된 서정협 행정 제1부시장은, 10일 서울시청에서 긴급브리핑을 갖고 "서울시정은 안전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박원순 시장의 시정 철학에 따라 중단 없이, 굳건히 계속돼야 한다"며 "부시장단과 실국본부장을 중심으로 모든 서울시 공무원이 하나가 돼 시정업무를 차질 없이 챙겨 나가겠다"고 밝혔으며 "흔들림 없는 시정을 위해 시민 여러분께서도 함께해달라"고 전했다.

서정협 행정 제1부시장은,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서울시청의 행정업무를 시작했으며, 기획조정실 실장, 시민소통기획관, 서울시장 비서실장 등의 직책을 역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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